익산 사자사지에서 만난 돌과 바람이 전하는 고요한 시간
흐린 봄날 오후, 익산 금마면의 들판을 지나며 낮은 언덕 위로 보이는 돌기둥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곳이 바로 사자사지였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잎이 살짝 흔들리고, 멀리서 까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요한 들판 한가운데 남아 있는 석탑과 석등, 그리고 주춧돌들이 흙 위에 조용히 놓여 있었습니다.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세월의 무게가 깃든 돌 표면에는 부드러운 빛이 감돌았습니다. 사찰의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지탱하던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발 아래에서 들리는 흙의 촉감이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1. 금마면 평야 끝자락의 고요한 유적
사자사지는 익산 금마면 향교리 마을 인근의 넓은 평야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금마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소요되며, 도로변의 ‘사자사지 삼층석탑’ 표지판을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도로가 평탄하여 접근이 편리하고, 유적지 앞에는 작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입구를 지나면 넓은 들판과 함께 석탑이 중심에 서 있고, 주위에는 복원된 석조물과 안내문이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주변은 농가와 밭이 이어져 있으며, 논 사이를 지나는 바람이 부드럽게 스쳤습니다. 봄철에는 노란 유채꽃이 들판을 덮어 유적지가 한층 생동감 있게 보였습니다.
2. 사찰의 흔적과 남은 석조물의 배열
현재 사자사지에는 삼층석탑과 석등, 주춧돌, 그리고 일부 기단석만 남아 있습니다. 삼층석탑은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각 층의 비례가 안정적이고 균형이 잡혀 있었습니다. 표면의 풍화가 꽤 진행되었지만, 모서리마다 조각의 흔적이 남아 있어 당시의 세련된 조형미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석등은 탑의 동쪽에 위치하며, 윗부분의 연화문 조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주변에 놓인 기단석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어 옛날 사찰의 규모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돌 하나하나가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듯한 존재감이 있었습니다.
3. 이름의 유래와 역사적 의미
사자사지는 백제 후기에 창건된 절터로 알려져 있으며, 절 이름의 ‘사자(獅子)’는 불법의 수호와 용맹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석탑 기단부에 사자상 네 기가 놓여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초기의 석조양식을 함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되며, 익산의 불교문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입니다. 금마면 일대가 백제 무왕의 활동 무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 절이 단순한 지방 사찰이 아니라 중심 불교권의 한 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의미와 함께 그 자취의 고요함이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4. 풍경과 분위기 속의 정적
사자사지는 다른 유적지와 달리 울타리나 높은 구조물이 없어 주변 자연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습니다. 들판 한가운데 놓인 탑은 바람과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고, 그 단단한 돌 표면에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기울면 석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였습니다. 인공적인 조명이나 안내 음성 없이 오직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들렸습니다. 한쪽에는 나무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 탑을 바라보기에 좋았고,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스칠 때마다 묘한 평온이 느껴졌습니다. 세월이 만든 정적이 오히려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5. 인근에 함께 둘러볼 명소
사자사지를 둘러본 뒤에는 차로 5분 거리의 ‘익산 미륵사지’를 함께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백제 최대의 절터로, 사자사지와 함께 익산 불교유적의 흐름을 잇는 공간입니다. 또한 금마서동공원과 서동생가터도 가까워 한나절 코스로 묶어보면 효율적입니다. 점심은 금마면 중심가의 ‘서동한우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익산역 앞 카페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면 좋습니다. 특히 봄철에는 유채꽃과 벚꽃이 피어 사자사지와 주변을 잇는 길이 사진 명소로 손꼽힙니다. 역사와 자연이 함께하는 익산의 매력을 가장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동선이었습니다.
6. 방문 팁과 현장 유의사항
사자사지는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주차 공간이 협소하므로 주말에는 이른 시간 방문이 좋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진입로가 질척이므로 운동화를 착용해야 합니다. 유적지 안에는 보호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석탑이나 석등에 직접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여름에는 들판의 햇빛이 강해 모자와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고, 겨울에는 바람이 세차므로 따뜻한 복장을 권합니다. 관람 시간은 오후 4시 이전이 가장 좋았고, 석양 무렵에는 탑의 실루엣이 선명해 사진이 아름답게 나왔습니다. 조용히 머무르며 바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무리
사자사지는 화려한 건물이 남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단정한 빈자리 속에서 오래된 신앙과 시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돌의 질감, 풀 냄새, 바람의 흐름이 모두 이곳의 역사와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짧은 머무름이었지만 마음이 고요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찾는다면 맑은 날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석탑을 비출 때 조용히 앉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습니다. 인위적인 복원보다 진짜 세월이 만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익산의 숨은 보석 같은 유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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