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골목에 스민 음악의 시간 홍난파가옥 산책기
봄 햇살이 은은히 스며들던 오전, 종로 홍파동의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홍난파가옥을 찾았습니다. 오래된 담벼락 사이로 붉은 벽돌 건물이 고개를 내밀었고, 그 순간 공기가 살짝 달라졌습니다. 도시의 바쁜 소리와는 다른 정적인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창문 틀 사이로 들어온 빛이 담장 위에 부서지며, 이곳이 한때 음악이 울려 퍼지던 자리였음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한국 근대 음악의 선구자 홍난파 선생이 살던 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건물의 세월이 단순한 오래됨이 아니라 ‘흐름이 남은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1. 종로 골목 끝에서 만나는 벽돌집
홍난파가옥은 종로구 홍파동 2번지 언덕길 끝자락에 자리해 있습니다.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7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도중에 서촌 특유의 낮은 담장과 한옥 지붕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붉은 벽돌 건물 한 채가 이국적인 분위기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입구에는 ‘국가유산 홍난파가옥’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었고, 정문 앞 작은 화단에는 수선화가 막 피어나 있었습니다. 주택가 안쪽이라 길이 조용했고, 가끔 주민들이 산책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비가 온 다음 날이라 공기가 맑았고,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마다 흙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오전 햇살이 건물 벽돌 사이사이를 따뜻하게 감싸며 오랜 세월의 결을 드러냈습니다.
2. 근대 감성이 살아 있는 건축미
가옥은 서양식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로, 1930년대 근대 건축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벽돌의 색감이 균일하지 않아 자연스러운 깊이가 느껴졌고, 창틀과 처마 밑의 세부 장식이 정교했습니다. 1층은 응접실과 작은 거실, 2층은 작업실로 쓰였던 공간으로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계단의 나무 손잡이는 손끝에 닿을 때마다 미세한 온기가 전해졌고, 오래된 바닥판에서는 나무의 향이 났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부드럽고, 그 아래 놓인 피아노 모형이 과거의 선율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건물 전체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음악가의 섬세한 감성을 닮은 구조였습니다. 작은 창문 하나에도 균형과 절제가 담겨 있었습니다.
3. 음악과 사람이 남긴 이야기
홍난파 선생은 한국 근대 음악의 기틀을 세운 작곡가로, ‘봉선화’, ‘고향의 봄’ 등 지금도 사랑받는 곡들을 남겼습니다. 이 가옥은 그가 생활하며 작곡과 교육을 병행하던 곳으로, 당시 음악인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내부에는 그의 대표곡 악보와 당시 사용하던 바이올린, 필사 원고의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벽면에는 선생이 직접 쓴 편지 일부가 걸려 있었는데,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한다’는 문장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공간을 천천히 걸으며 그가 음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순수한 열정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낡은 건물이지만 그 안의 공기는 유난히 맑고 따뜻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울리는 듯한 고요한 리듬이 감돌았습니다.
4. 세심하게 보존된 따뜻한 공간
가옥 내부는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전시물마다 간결한 설명문이 함께 붙어 있어 관람이 편했습니다. 벽돌의 표면은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복원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중히 보존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닥은 목재를 그대로 사용해 자연스러운 질감을 유지했고, 실내 조명은 은은한 노란빛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관람객이 많지 않아 조용히 머물며 감상할 수 있었고, 2층 창가에 앉아 내려다보는 마당 풍경이 소박하면서도 정겨웠습니다.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새소리와 함께, 피아노 건반 위를 흐르는 듯한 햇살이 공간 전체를 음악처럼 채웠습니다. 관리가 꼼꼼하면서도 집의 온기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5. 인근 문화공간과 함께 걷는 길
홍난파가옥을 둘러본 뒤에는 인근의 윤동주문학관, 통인시장, 그리고 경복궁 서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었습니다. 문학과 음악이 교차하는 서촌의 골목은 그 자체로 작은 예술 산책로처럼 느껴졌습니다. 윤동주문학관에서는 시인의 육필 원고를 볼 수 있고, 통인시장에서는 따뜻한 기름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조금 더 내려오면 배화여대 뒤편의 한적한 길이 이어지는데, 거기서 다시 뒤돌아보면 홍난파가옥의 붉은 지붕이 살짝 보였습니다. 그 풍경이 마치 한 장의 오래된 흑백사진 같았습니다. 음악가의 집을 중심으로 서촌의 문화 맥락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계절마다 색이 달라지는 길이라 언제 다시 걸어도 새로운 인상이 남을 듯했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점
홍난파가옥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하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월요일과 공휴일에는 휴관합니다. 관람 시간은 약 30분 정도면 충분하고, 실내에서는 음식물 섭취와 플래시 촬영이 제한됩니다. 골목이 좁아 주차는 어렵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봄과 가을에는 마당의 화단이 아름답게 꾸며져 사진 촬영에도 좋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관람 전 홍난파의 곡을 한두 곡 들어보고 오면 공간의 분위기가 한층 깊게 느껴집니다. 내부는 조용한 공간이니 작은 소리로 대화하며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오전 햇살이 가장 예쁘게 들어오는 시간대가 특히 추천됩니다.
마무리
홍난파가옥은 단순한 근대 건축물이 아니라, 음악이 머물던 시간의 집이었습니다. 붉은 벽돌의 질감,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 그리고 조용히 울리는 나무 바닥의 소리가 모두 한 곡의 선율처럼 이어졌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마음이 맑아지고 어깨의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심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의 온기와 예술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비 오는 날 찾아, 빗소리와 함께 건물의 리듬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날 이 집의 벽돌 사이로 흘러나오던 조용한 바람마저, 한때 음악이 머물던 선율의 잔향처럼 오래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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